언론보도
18일 오후 울산시 북구 오토밸리복지센터 4층 ‘울산노동역사관 1987’.
국내 최초의 노동자 역사관답게 입구에는 중공업·자동차·병원 노동자들의 작업복 120벌로 만든 조형물 ‘거인의 꿈’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곳곳에 기름 찌꺼기가 묻었고, 아직도 땀냄새가 나는 듯했다. 조형물에는 ‘일당 1만원짜리 작업복, 정문을 들어서면 입어야 하는 죄수복’이란 부제가 달려 있다. 정원경 문화해설사는 “작품을 만들 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작업복 질감이 매우 차이가 났다”고 설명했다.
그 옆에는 노동현장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단결 투쟁가’의 원문인 백무산의 시 ‘전진하는 노동전사’가 새겨진 커다란 현판이 세워졌다. 1987년 지게차와 트럭을 앞세운 채 울산시 동구 남목 일대에서 거리행진을 했던 ‘노동 대투쟁’ 당시의 장면이 시문의 배경사진으로 깔렸다. 이어 1920년 울산 일산리 노동야학, 1929년 울산노동조합 창립 등 일제강점기의 노동운동과 함께 고 서진문 선생을 비롯한 일제강점기 노동운동가 3인을 소개하는 기획전시공간이 나타난다.

노동역사관의 핵심 볼거리는 1987년 7월부터 9월까지 계속된 울산 노동 대투쟁과 관련된 자료들이다. 그해 7월 현대엔진 노조 창립을 시작으로 현대그룹 각 계열사에서 민주노조가 연쇄적으로 설립되면서 노동자 생존권 쟁취를 위한 대규모 파업·시위가 진행됐다. 1988년 현대중공업 노조의 128일간에 걸친 파업과 1990년 4월 ‘골리앗’ 점거 파업으로 이어졌고, 현대그룹 계열사 노조가 연합해 ‘현총련(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합)’이 결성(1990년 2월)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한 노동자가 받은 1986년 급여명세서는 당시 궁핍한 노동자의 삶을 보여준다. 월급 총액은 25만여원, 세금을 공제한 실지급액은 19만6000원이라고 씌어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1987년 도시노동자의 평균 월급 총액(48만2000원)에 턱없이 모자랐다. 배 국장은 “그나마 하루 12시간 안팎의 노동을 한 대가였다”고 말했다. 전시물 중에는 유인물 제작 때 사용한 등사기도 있었다. 자동인쇄를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절 노동운동가들은 유인물의 내용을 직접 글로 쓴 뒤 밤을 새워가며 등사기로 수천장씩을 찍어냈다.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1989년 7월 초청강연회를 연다는 선전문과 현대중공업 노조가입원서도 눈길을 끈다.
노동역사관은 1987년 이후 달라진 풍토도 알려준다. 민주노조가 설립하기 전에는 노예 같은 신세, 폭압적인 공장관리, 초저임금과 최장시간의 노동, 굴종을 강요하는 차별관리 등이 노조가 생긴 후 새로운 인간으로 부활되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며, 회사·가정·사회의 주체로 노동자가 등장한 점을 들고 있다.
지난달 27일 문을 연 이곳은 현대차 노사가 사회공헌 차원에서 기부채납한 건물에 울산 북구와 노동시민단체들이 뜻을 모아 2007년부터 수집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배문석 사무국장은 “산업관이나 산업박물관은 곳곳에 있지만, 산업을 일군 노동자들은 없었다”면서 “노동자들의 삶, 투쟁, 문화를 아우르는 공간이자 미래 세대들에게 노동의 가치를 체험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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