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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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울산저널 지상 갤러리 - 이관술의 길 아카이브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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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2
  •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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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술은 1930년대 경성반제국주의동맹, 경성트로이카, 경성콤그룹을 결성해 1940년대 일제강점기 후반에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의 마지막 비밀결사조직을 이끌었다. 1941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을 때, 독립운동가에 대한 살인 고문으로 악명 높았던 노덕술과 일제 경찰의 고문을 당했지만 동지들의 소재를 끝까지 밝히지 않았다. 1943년 고문 후유증으로 가석방돼 고향 입암마을에서 요양하다 탈출을 감행했다. 그 뒤 해방까지 이관술은 계속 일제경찰 체포 1순위였다.


해방 후 잡지 <선구>에서 진행된 첫 정치여론조사 ‘가장 양심적이고 역량 있는 정치지도자’에서 5위에 올랐다(여운형 33%, 이승만 21%, 김구 18%, 박헌영 16%, 이관술 12%, 김일성 9%, 최현배 7%, 김규식 6%, 서재필 5%, 홍남표 5%). 그러나 1946년 미군정의 정치공작 소위 ‘정판사 사건’이라는 위폐조작사건으로 누명을 쓰고 1947년 무기징역이 확정돼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다. 1950년 7월 3일 한국전쟁 초기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군인들의 불법적 집단학살 총살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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